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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 유래와 설화

전경

느낌이 있는 곳, 지혜를 주는 절, 금정산을 돌아 들어온 신성한 물과 공기가 머물고 맑은 목탁 소리가 새벽을 깨우는 천년 고찰, 금정총림범어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범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의 본사로서 조계 8대 총림의 하나이면서 해인사, 통도사와 함께 영남3대 사찰입니다. 인 사찰입니다. 약 1,300여년 전인 678년, 신라 문무왕18년 의상대사가 화엄십찰의 하나로 왜구를 물리치기 위한 호국비보사찰로 창건하였습니다. 이후 835년, 신라 흥덕왕 10년에 개창 된 후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으나 1613년, 광해군 5년 묘전 화상이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1703년 숙종 29년에는 금정산성 축조 후 승군사령부로서 성곽 수비를 맡는 등 지역방위체제의 일익도 담당 하였으며 구 한말에는 사라져가던 전통 선풍을 부흥시켜 조선총독부로부터 선찰대본산으로 인가 받았습니다.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때는 ‘범어사학림의거’를 주도하는 등 항일운동을 펼치기도 하였고 1950년대는 동산 대종사가 주도한 불교정화운동의 중심지로서 용성, 동산, 성철을 비롯한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면서 오늘의 종합 수행 도량인 총림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천년 고찰 범어사는 어떤 유래로 창건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1,300여 년 전, 바다 동쪽의 왜구들은 호시탐탐 신라 침략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에 문무 대왕은 근심과 걱정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꿈에 기인이 나타나“대왕이시여, 근심하지 마십시오. 태백산 산중에 의상이라는 큰 스님이 계시는데, 항상 성스러운3천 명의 대중을 거느리고 화엄법문을 연설하기에, 여러 신과 천왕이 항상 떠나지 않고 수행합니다. 또한 동쪽 해변에 금정산이 있고 그 산정에 높이50여 척이나 되는 바위가 우뚝 솟아 있습니다. 그 바위 위에는 항상 금빛으로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습니다. 그 우물에는 하늘나라로부터 오색찬란한 구름을 타고 내려온 한 마리의 금빛 물고기가 헤엄치며 놀고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의상 스님과 함께 그 산의 바위 아래로 가셔서 칠일 칠야 동안 화엄 신중을 독송하면 그 정성에 따라 동해의 왜병들을 진압할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곧 사라졌다.

아침이 되자 왕은 신하들을 모아 놓고 꿈 이야기를 하고 곧 의상대사를 맞아오게 하여, 함께 금정산으로 가, 칠일 철야를 열심히 독경했습니다. 이에 땅이 크게 진동하면서 홀연히 여러 부처님과 천왕, 신중 그리고 문수동자들이 변하여 모두 병기를 가지고서 동해의 왜적을 토벌하니 모든 왜인 병사가 빠져 죽고 살아남는 자가 없었습니다. 대승을 거두고 돌아온 왕은 크게 기뻐하여 의상 스님과 함께 금정산 아래에 큰 절을 세웠으니, 그것이 바로 호국비보사찰 범어사 입니다.

조선조 역사서 ‘신증 동국여지승람’과 ‘동래부지’에도 이러한 창건설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