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가르침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꾸밈, 가식과 미움 원망 없고
스스로 가둔 속박에서 벗어나
때 묻지 않은 마음이 곧 如如

수행하면서 인생 활로 찾아
출가수행자가 번뇌 끊어내고
시비 자유로워지면서 ‘전법’

금정총림 방장 여산 정여대종사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단어가 바로 ‘여여(如如)’이다. 스님은 1995년 여여선원을 창건해 30년 가까이 대중을 상대로 수행을 지도하고 전법을 해왔고, 홈페이지 이름도 ‘여여한 세상’이다. 여여는 “가식과 꾸밈이 없으며 미움과 원망도 사라지고 옳고 그른 관념의 틀도 사라져, 때 묻지 않은 연꽃 같은 마음”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자, 때 묻지 않은 마음의 세계에서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머문 그 자리에서 행복을’ 알아차리는 것이 곧 여여인 것이다.

갑진년 새해를 앞두고 정여대종사를 12월19일 부산 범어사 안양암에서 만나 가르침을 청했다. 인터뷰는 박부영 편집국장이 진행했다. 

지난 11월 금정총림 방장으로 추대된 정여스님은 대중 화합을 통해 총림 안정과 발전을 이루기 위해 진력하고 있다. 출가해 50년을 수행과 포교에 전념해온 스님은 부처님 가르침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전법하고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갑진년 새해를 맞아 금정총림 방장 여산 정여대종사를 12월19일 부산 범어사 안양암에서 만나 여여함을 얻을 수 있는 가르침을 청했다.  사진=유지호 부산지사장
갑진년 새해를 맞아 금정총림 방장 여산 정여대종사를 12월19일 부산 범어사 안양암에서 만나 여여함을 얻을 수 있는 가르침을 청했다.  사진=유지호 부산지사장

 

“여여라는 말은 지금 이 자리일 뿐이다. 차를 마실 때는 차를 마실 뿐이고,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먹을 뿐이다. 여여한 상태로 가려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 또한 의미 없다. 지금 이대로 일뿐 다른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이것보다 더 아름다운 세계도 없고, 더 좋은 세계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방장 스님은 우리 스스로를 가둔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은 나를 얽매지 않았고, 누구도 나를 속박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온갖 틀에 묶여 있다. 사회적, 직장의 틀 속에서 사는 것은 당연하나, 마음만은 걸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해야 한다.

스님도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전국 제방에서 정진해 왔다. 조계종 종정을 지낸 법전스님이 김천 수도암 선원장으로 있을 때, 1년간 함께 정진했다. 겨울이면 성인 허리 높이도 훌쩍 넘게 눈이 내리는 수행도량이다. 가야산 주봉이 활짝 핀 연꽃처럼 보이는 이곳에서 스님은 부처님께서 설산에서 수행했던 기록을 떠올리며 정진했다. 

또 현풍 도솔암에서 만공스님 법을 이은 성찬스님과 공부했고, 쌍계사 금당에서는 문밖을 일절 나가지 않고 수행하기도 했다.

수행자는 반드시 고행해야 할까. 방장 스님은 부처님께서도 6년간 수행하시면서 혹독한 고행을 하셨음을 상기시키며 “고행이 수행의 기본은 아니지만, 때로는 목숨을 건 투쟁을 하면서 본성을 보고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찬 서리가 몸에 앉는 것 같은 혹독한 정진 속에서 자신을 보는 게 의미 있다”고 설명했다.

방장 스님은 쌍계사 금당 3년 정진을 회향하고 세간으로 나왔다. 스님은 “부처님도 자유인이 된 후에 혼자 자유를 만끽한 게 아니라, 욕망과 욕심의 포로가 되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려고 전법을 하셨다”며 “출가자가 수행해서 자신의 길을 올곧게 갈 수 있다면, 들끓던 번뇌를 끊어내고 시비에 자유로운 자가 됐다면, 전법을 하는 게 마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금강암 한글 현판 주련 제작

화두선 중심 수행에서 벗어나

재가자에 적합한 명상 포교도

스님은 먼저 부처님 가르침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글로 불교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표적인 예가 범어사 산내암자인 금강암 현판과 주련을 모두 한글로 제작한 것이다. 금당 정진을 마치고 금강암으로 돌아온 정여스님은 은사 벽파스님의 뜻을 받들어 1984년부터 8년간 금강암 중창불사를 시작했다. 지금도 유명한 금강암 한글 현판과 주련은 정여스님이 조성한 것이다. 대웅전 현판은 한글로 ‘대자비전’이라고 쓰고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라는 문수보살 말씀을 한글로 적어 주련을 달았다. 

스님은 “한글 주련을 걸고 나니 많은 이들이 찾아와 게송을 읽고 이해했고, 목사나 신부 같은 타종교인도 찾아와 적어 가기도 했다”고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도 쉽게 읽어서 좋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스님은 전법을 쉽고 재미있게 해야겠다는 뜻이 확고했다.

종단이 최근 미래불교를 위해 사활을 걸고 포교에 나선 것보다 30여 년 앞서 정여스님은 계층포교와 불교사회복지를 통한 불교 대중화를 실천했다. 1998년 불교교사대학을 설립해 계층법회 지도자를 키워온 것이 대표적이다. 부산불교어린이회가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뜻을 세웠는데, 시작하자마자 큰 벽에 부딪혔다. 어린이들한테 가르쳐줄 콘텐츠가 마땅치 않았고, 경전 속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할 전문가가 필요했다.

선기공 시범을 보이는 방장 스님.

스님은 1998년 종단 특수대학 1호로 불교교사대학을 설립했다. 1년 과정으로 개설해, 수료하고 나면 어린이를 가르칠 수 있는 2급 지도자 자격증을 주고, 레크리에이션 2급, 아트풍선 및 종이접기 관련 2급 자격증도 줬다. “지도자를 양성해서 여름 겨울방학을 앞두고 속리산 유스호스텔에서 500~600여 명이 모여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지도법을 익혔다”며 “1기수에 60명 정도를 배출했는데 부산불교 사회복지계에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불교교사대학 출신들이 많다. 부산불교활성화에 좋은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

부산 불교사회복지 발전에도 적지 않게 기여했다. 웬만큼 잘 살지 않으면 끼니 거르던 시절을 지냈던 스님은 “성장해 힘이 생기면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일찍부터 자비의 원력을 세운 스님은 1997년 개금사회복지관 관장 소임을 맡는 것으로 실천했다. 

또한 무료급식소, 노숙자 쉼터, 시니어클럽 등을 운영했고, 금정노인요양원 개원을 이끌었으며, 사회복지법인 보현도량 이사장을 맡아 사회복지 전반을 경험하고 전문적인 지식도 쌓았다. 범어사 주지 시절에는 스님들 30명을 양산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시켰다. 그렇게 졸업한 스님들이 부산불교사회복지계에서 활약을 하고 있다. 또한 스님은 2008년 (사)부산불교사회복지협의회를 창립해 초대 이사장을 맡아 지금까지 이끌어오고 있다.

불교사회복지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에 이르자 스님은 국외로 눈을 돌렸다. 사단법인 세상을 향기롭게를 출범한 스님은 라오스에 학교를 짓고, 영어 전문학교를 만들었다. 미얀마 스님과 협력해 기술학교도 지었다. 캄보디아에는 10년 전부터 통학용 자전거를 지원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1년에 500대를 보낼 때도 있었고 연평균 300대 자전거를 보냈다. 또 스님은 캄보디아에 장애인을 위한 보금자리 주택을 건설했다. 부족한 학교 교실도 지어줬다. 로터스월드에도 자전거 500대를 보내기도 했다.

“국민 신망 받으려면 스님들 현장으로 들어가야”

방장 스님은 “불교가 국민에게 신망을 받으려면 스님들이 몸소 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며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을 줘야 하는 것처럼 사회복지와 해외구호 활동이 다양화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장 스님은 “불교가 국민에게 신망을 받으려면 스님들이 몸소 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며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을 줘야 하는 것처럼 사회복지와 해외구호 활동이 다양화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불교가 국민에게 신망을 받으려면 스님들이 몸소 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며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을 줘야 하는 것처럼 사회복지와 해외구호 활동이 현실 속에서 다양화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한국사회에 다문화 가정이 많아진 것에 대해서도 좀더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스님은 “우리 문화도 알려줘 한국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하는 소명이 우리에게 있다”면서 “부처님을 믿는 동남아국가 출신 이주민이 적지 않은 데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친절하게 대해줘야 우리 국민이 되지 않겠냐”고 강조했다.

오랜 세월 지치지 않고 사회복지불사를 해온 스님은 현대인이 가진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갔다. “조계종은 선명상, 화두선이 중심인데, 재가자들이 화두선 들고 수행하기는 원활하지 않아 명상법을 개발했다”는 스님은 저서 <나를 찾아가는 명상여행>을 통해 명상법을 쉽고 편안하게 지도했다.

방장 스님은 “늘 맑게 깨어서 자기 자신을 봐야 함에도 우리는 스스로를 보지 못하고, 그래서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화를 낸다”고 했다. 화내고 짜증나는 순간 ‘내가 업에 이끌려 습관적으로 화내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미움이 일어날 때는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구나’ 하고 깨달아야 한다. 나도 모르게 인색해질 때는 ‘내가 바늘귀 마냥 좁은 마음 내고 있구나, 나도 부처님처럼 넉넉한 마음 가져야지’ 하고 스스로 콘트롤할 줄 알아야 한다. 스님은 “때 묻지 않은 연꽃 같은 마음으로 돌아가는 게 우리가 말하는 선명상이라고 생각한다”며 스님 저서가 스테디셀러가 된 것은 독자 대중이 여기에 공감했기 때문이 아니겠냐며 웃었다.

계층포교 사회복지 사업하고
해외구호활동으로 영역 확대

청소년 대상 선기공 13식 개발
교육청 등록, 교육지도자 양성

파라미타청소년협회장을 역임하면서 청소년 명상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스님은 ‘선기공 13식’을 개발해 직접 지도하며 청소년 명상힐링지도사도 양성하기도 했다. 선기공 13식을 만든 연유를 묻자 스님은 “쌍계사에서 중국계 스님을 만나서 선기공을 습득했다”며 “어린이 청소년들은 가만히 앉아서 명상하기가 쉽지 않아 호흡과 동작을 가미한 수행법을 만들었다”고 했다.

선기공 13식은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호흡과 움직임을 함께하는 것이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팔을 교차행공 하는데, 팔을 벌리고 오므리거나,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한다. 쉬운 동작이라 누구나 따라할 수 있고, 반복하다 보면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산만한 마음을 고요히 하는데 도움 된다. 스님이 만든 선기공 13식은 교육청에 등록됐으며, 파라미타 청소년 지도자, 대불어 지도자 등에게 교육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방장 스님이 직접 지도했고 지금은 스님의 상좌 도명스님에게 전수했다.

방장 스님은 “명상을 하다 보면, 맑고 고요해진다. 시끄러운 상태가 사라지고 옳고 그름이 사라지면 마음속에 있던 원망과 미움도 없어진다”며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만 남은 가운데 배려심이 싹튼다. 그럼 삶이 아름다워질 수밖에 없다”고 설했다. 그러면서 사회를 훈훈하고 따뜻하고, 이웃과 어려움 함께 나눌 수 있는 부처님 가르침이야 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세파에 찌들어 황폐해진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 게 우리 사부대중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총림 운영 최우선 가치 ‘화합’
본사 스님 복지제도 개선 기대

방장 취임 후 스님은 총림을 운영하고 대중을 아우르며 소통과 화합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고 했다. 스님은 “소임이 가진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고 책임도 상당하다”며 “범어사도 여러 개 문중이 모여서 총림을 구성하고 있는데, 문중 스님들 잘 화합하고 이끌어가는 가운데 범어사 문제를 터놓고 상의하고, 현안을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교구 소속 스님들의 복지제도를 개선하고 싶은 바람도 크다. 우선 범어사에서 평생 수행한 스님들 가운데 일부 갈 곳 없는 스님, 비구니 스님들이 여생을 살 수 있는 수행관을 만드는 것이다. 범어사권에 요양병원을 만들어 스님들 치료받을 수 있게 하고, 스님들 입적하면 법납과 관계 없이 다비 후 49재를 봉행해주는 것도 포함된다. 전국 사찰에서 수행하는 범어사 스님들에게 수행기금을 꾸준히 지급하고 병 들었을 때 치료비를 지원해주는 방안도 마련하고자 한다. 스님은 “제도가 갖춰지면 스님들이 ‘나에게는 본사가 있고, 범어사가 나를 살펴준다’는 자신감과 안정감으로 수행 전법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동안거 결제가 한창인 지금 방장 스님은 “승복을 입었지만 아직도 객관경계에 끄달리고 시비에 끄달리면 본성을 꿰뚫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화두의정을 돈발해 이번 철에 기필고 생사의 큰문제를 해결해서, 전부 출격장부가 되고 자유인이 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재가에서 수행하는 신도들도 참선과 염불 독경 사경 기도를 하면 반드시 성취한다는 자신감을 갖고, 꾸준히 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며 쉼 없는 정진을 주문했다.

갑진년 새해를 맞아 덕담도 잊지 않았다. 스님은 “떠오르는 햇살처럼 밝은 마음을 갖고 어려운 이웃과 부처님 자비를 나눌 수 있는 불자가 되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정리=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사진=유지호 부산지사장 kbulgyo@ibulgyo.com 

정여대종사는 

벽파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75년 7월15일 부산 범어사에서 지유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1976년 3월15일 부산 범어사에서 고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김천 수도암, 현풍 도성암, 하동 쌍계사 금당, 문경 봉암사, 해남 대흥사, 인제 백담사 무문관, 포항 보경사에서 정진했다. 또 오대산 상원사 청량선원, 오대산 북대 미륵암 상왕선원, 통도사 서운암 무위선원, 범어사 금어선원에서도 안거를 났다.

또한 스님은 범어사 주지를 지내며 부산광역시불교연합회장 및 이사장을 지냈다. 대한불교교사대학을 설립해 학장 소임을 맡으며 어린이 청소년 포교를 담당할 지도자들을 육성했고, 사단법인 파라미타청소년연합회장을 맡아 청소년 포교에 일조했다. 사회복지법인 보현도량 이사장, 사회복지법인 범어 이사장, 부산광역시불교복지협의회 이사장을 지내며 불교사회복지 발전에 기여했다. 또 재단법인 보현장학회 이사장, 사단법인 세상을향기롭게 대표를 맡아 이웃을 돌보는 등 출가해 지금까지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실천하고 있다.

스님은 범어사 금강암 중창불사 공로를 인정 받아 1991년 조계종 총무원장 공로 표창패를 수상했고 2000년에는 부산불교회관을 건립한 공로로 종정 표창패를 받았다. 2001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에 이어 2005년 다촌문화상 공로상과 포교대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스님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나를 찾아가는 명상여행>과 <머무는 그 자리에서 행복을> 등이 있다.

[불교신문 3801호/2024년1월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