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경선(鏡禪)스님은 "사바세계의 혼란은 우리가 태어날 때 그런 운명(업)을 갖고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중생 세계는 완전할 수 없으며,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회의 혼란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생세계는 완전할 수 없어
사회 혼란과 함께 살 수밖에
악하고 미운 사람일수록
선한 마음으로 제도 절실
모범적 언행 자체가 포교
경주 최부잣집 정신처럼
각자의 부·재능·지식 나눠야
다만, 불교에서는 동체대비심(同體大悲心)의 자비를 말하는데, 이러한 자비의 마음과 실천으로 불안과 혼란에 대처하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체대비심이란 상대의 몸을 내 몸처럼 느끼는 데서 생기는 대자비를 말한다.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마치 내가 겪는 것처럼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고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그것이 바로 동체대비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경선 스님은 부처님께서 도를 깨닫고 49년 동안 중생과 사회를 위해 설법을 하셨는데, '불설일체법(佛說一切法) 위도일체심(爲度一切心)'의 두 구절로 압축할 수 있다고 전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일체의 법은 마음을 제도(濟度)하기 위해서라는 뜻이다.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데, 그 마음을 잘 이끌기 위해 부처님께서 설법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을 제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악한 마음을 선한 마음으로, 도둑심을 착한 마음으로, 중생심을 부처의 마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경선 스님은 풀이했다.
악하고 미운 사람일수록 더욱 간절하게 선한 사람으로 돌리려고 하는 부처의 마음, 지옥 중생들을 모두 제도한 후에 지옥을 나가겠다고 다짐한 지장보살의 마음, 아무리 애를 먹이고 죄를 지은 자식이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어머니의 마음이 모두 불심(佛心)이며,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르침의 요체라는 설명이다.
불가에서는 이 세상 모든 사회악과 다툼과 전쟁 등 혼란은 탐심(貪心), 진심(瞋心), 치심(癡心) 등 인간의 삼독심(三毒心)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탐하는 욕심과 성내는 분노의 마음과 사물의 이치를 바르게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모든 불행이 싹튼다고 보는 것이다. 그 때문에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근본정신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불교에서는 가르친다.
특히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정신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이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기 이전에 나부터 먼저 맑고 깨끗한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수행해야 한다고 경선 스님은 강조했다. 내가 탁하고 이기심으로 가득차 있는데 누가 나의 말을 듣겠느냐는 것이다. 내가 싫은 것을 타인에게 미루는 것과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모두 탐심 때문이며, 그런 탐심과 중생심을 씻어내기 위해서는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자비심을 가지고 자기뿐만 아니라 가족과 이웃을 향해 마음을 열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경선 스님은 그런 의미에서 불자는 기도와 수행과 공부로써 누가 봐도 '저 사람은 불심으로 살아가는 불자구나' 하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사회 속에서 언행의 모범을 보여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 언행 자체가 바로 포교라는 것이다. 경선 스님은 또 이러한 자비심의 실천은 종교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했다. 대만의 증엄 스님을 예로 들면서 "그분은 재난을 당하거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자선과 빈곤 구제에 앞장서 병원 건립은 물론 교회까지 세워줘 주위를 이롭게 함으로써 모두의 존경을 받게 됐다"고 소개했다.
"꽃이 아름답고 향기가 나면 자연스럽게 벌과 나비가 날아들게 마련입니다. 매화는 추운 겨울에 피어나고, 난초는 깊은 골짜기에서도 향기를 발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동료가 승진하면 언짢아지는 시기와 질투의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좋은 향기를 뿜어낼 수 있도록 좋은 마음과 말과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불교인의 바람직한 자세라는 얘기다.
불안과 혼란의 시대에 희망을 길어 올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보현보살의 실천이 중요하다고 경선 스님은 힘주어 말한다. 문수보살이 지혜를 상징한다면 보현보살은 석가가 중생을 제도하는 행(行)의 덕을 맡아보는 보살이다. "아는 것을 전달하고 지혜를 실천해야 희망의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경선 스님은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경주 최부잣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정신처럼 "각자가 갖고 있는 지혜와 지식, 부와 재능을 우리 사회와 이웃을 위해 나누고 베푸는 실천의 삶이 필요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