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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안과 피안의 길목에서

박기백 | 2014-04-08 | 조회수 : 302

초속성과 세속성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물론 세속적이다.

그런데 종교적이 된다는 것은 단지 세속적이 된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초속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초속적인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가? 초속적이지않으면 종교를 믿을수 없다고도 말 할 수 있는가? 또한 초속적이라는 것은 세속을 떠난 입장을 말하는 것이라면, 실제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 세속적인 입장으로서는 종교를 믿을 수 없다는 말도 된다면, 결국 세속적인 입장으로서는 종교를 가질 수 없다는 말도 된다

.

그러나 종교는 어느 종교를 물론하고 초속적인 입장을 포함하고 있기 마련이다(영생, 해탈 등). 한편 종교가 세속, 곧 이 세상을 떠나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다. 종교가 주장하는 것을 보더라도 이중적이다. 곧 초속적인가 하면 세속적이다.

종교가 주장하는 이중성, 초속적인가 하면, 한편 세속적이지않을 수 없는 이 양면성이야말로 종교가 지니고 있는 난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세속적이지않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초속적인 면을 주장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종교의 진면목이라 할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이중성은 인간성 자체인줄도 모른다. 세속적이면서도 한편 초속적인 것이 인간성이라고 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세속을 떠날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한편 으레히 종교가 갖기마련인 초속적인 것을 해명하지않을 수 없다는 것은 이 때문인 것이다.

다음의 책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책제목=깨달음의 두 길. 저자=박기백. 출판사=인간과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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