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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동산대종사 열반 50주기 특별기획 1. 수행〈中〉 계율

운영자 | 2015-04-23 | 조회수 : 7781
기획연재
“공부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계행을 깨끗이 해야 한다”
금정총림 범어사ㆍ불교신문사 공동
동산대종사 열반 50주기 특별기획 1. 수행〈中〉 계율
  
1964년 음력 5월5일 속리산 법주사 미륵대불 점안법회에서 법문을 하는 동산스님.


계율은 수행자의 제일 근간이다. 계율을 지키는 것에서 수행 정진이 시작되기에 불교인에게는 계율이 주춧돌이다. 기초가 튼튼해야 그 위에 건물을 지을 수 있고, 오랜 기간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다. 계율을 지키지 않은 수행은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것이 선지식들의 한결같은 가르침이다.

동산스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간화선 수행을 중심으로 평생 정진하면서, 계율을 수지하고 온전하게 지키는 것이 불자의 당연한 도리임을 쉼 없이 역설했다. 정화불사를 선도한 것도 계율을 지키는 청정승단을 복원하기 위한 원력의 일환이었다.

용성스님은 지리산 칠불암에서 서상수계(瑞祥受戒)한 대은(大隱) 율사의 계맥을 이어 받았다. 대은스님의 계맥은 금담(錦潭)-초의(草衣)-범해(梵海)-선곡(禪谷)-용성(龍城)스님을 통해 동산스님에게 이어졌다. 이때가 1936년 음력 11월18일이다.

또한 동산스님은 범어사에 전래되어 온 중국 법원사의 계법(戒法)을 영명(永明)스님에게 전수 받았다. 이때가 1943년이다. 1892년 만하(萬下)스님이 중국 법원사 계단을 참례하고, 창도(昌濤)율사에게 대소승계를 받고 귀국해 계단을 열어 전수해온 계법이다.

용성ㆍ영명스님에게 계맥 받아

한국불교 계율 중흥 위해 노력

‘계율호지 수행’ 으뜸으로 여겨

평생 좌우명도 ‘감인대(堪忍待)’

만하스님은 1897년 범어사 성월(惺月)스님과 통도사 해담(海曇)스님에게 계를 전했다. 성월-일봉(一鳳)-운봉(雲峰)-영명스님으로 이어진 계맥이 동산스님에게 전해진 것이다.

용성스님과 영명스님을 통해 각각의 계맥을 받은 동산스님은 한국불교 계율을 중흥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계율을 호지하고 수행하는 것을 으뜸으로 여긴 동산스님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은 ‘감인대(堪忍待, 견디고 참고 기다리는)’ 역시 계율 정신과 맥을 같이한다. 첫 항목에 ‘감’을 내세워 계율의 중요성을 강조한 스님은 대중에게 계향(戒香)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평소 “공부인은 계행(戒行)을 깨끗이 가져야 한다. 계를 우습게 알고 불조(佛祖)의 말씀을 신(信)하지 않는 이가 있다. 부처님이 그렇게 행한 일이 없고, 조사가 그렇게 한 일이 없다”고 강조한 것도 계율 호지에 대한 신념 때문이었다.

동산스님은 1947년에는 중앙선원 금강계단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으로 계를 설하기도 했다. 당시 갈마아사리는 영명(永明)스님, 교수아사리는 호일(晧日)스님, 존증아사리는 한암(漢岩), 석상(石霜), 상월(霜月), 석우(石友), 효봉(曉峰), 인곡(仁谷), 동헌(東軒)스님 등 당대 고승(高僧)들이었다.

  
1950년 음력 3월15일 범어사 금강계단 수계자 기념사진.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에 동산스님.


스님은 계맥을 전수 받기 이전인 1930년 음력 3월15일 범어사 금강계단(金剛戒壇)에서 봉행된 보살계 수계법회에 교수화상으로 처음 계를 설한 기록도 전한다. 범어사 선원 조실로 납자들을 지도하고 있었을 무렵으로, 용성스님에게 전계를 받기 전이어서 교수화상으로 참여한 것이다.

전계대화상으로 계를 설한 1957년 중앙선원 금강계단의 금강계첩에 따르면 계율 호지에 대한 동산스님의 의중을 짐작할 수 있다.

“고생(苦生) 바다를 건너서 끝없이 밝고 즐거운 저 언덕에 이르려면 심지(心地) 법문과 십중대계와 사십팔계를 받아 지켜야 하는 것이요. 특히 출가한 이는 비구계나 비구니계까지 가져야 한다. … 동산 율사가 이제 정혜선원 금강계단에서 보살대계와 구족계를 전수하니 지극한 마음으로 받들어 가져 범하지 말고 부처님 혜명을 길이 빛낼지이다.”

당시 갈마아사리는 인곡(麟谷)스님, 교수아사리는 석암(昔巖)스님이었다. 존증아사리는 금초(錦超), 미산(米山), 환봉(幻峰), 한송(漢松), 고송(古松), 동운(東雲), 일부(一夫)스님이었고, 인례는 도광(導光), 운문(雲門)스님이었다.

범어사, 동산스님 수행가풍 계승

2013년 율학승가대학원 개원

지난 3월 첫 졸업생 10명 배출

“역사의 한 페이지 장식” 쾌거

이같은 사실을 종합하면 한국불교 계단(戒壇)의 중심에 있는 동산스님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스님은 계율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출재가 대중에게 계를 설했다. 중앙선원과 범어사 금강계단 이외에도 전국 주요 사찰에서 계를 설하며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살도록 대중을 인도했다. 실제 생활에서 불법(佛法)에 의지해 살아갈 것을 독려했던 것이다.

1943년부터 1965년까지 23년간 한해도 빠짐없이 범어사 금강계단을 주관하고, 대소 사찰에서 보살계(菩薩戒)를 설하며 계율 정신 함양에 앞장섰다.

보살계에 대해 동산스님은 “천성(千聖)을 세우는 땅이 되고, 만 가지 선법(善法)을 내는 터가 된다”면서 “이 모두가 보살계로부터 나오며 우리의 마음 가운데 뜨거운 번뇌를 덜기 위해 감로문(甘露門)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설했다. 스님은 “이제 부처님 전에 정각의 길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 보살계며, 이러한 큰 보배를 지금 얻는 것”이라고 보살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동산스님은 출가 수행자는 물론 재가 불자들에게도 계율을 지키며 생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60년 4월1일자 <대한불교(지금의 불교신문)>에 실린 종정(宗正) 동산스님 명의의 ‘전국 교도(敎徒)는 당면 과업을 수행(遂行)하라’는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계를 설하는 동산스님(왼쪽에서 네 번째) 세 번째는 석암스님, 다섯 번째는 고암스님.


당시 동산스님은 “신도의 신조(信條)로서 적어도 ‘재가오계(在家五戒)’와 ‘팔관재법(八關齋法)’은 실천해야겠다”면서 “이러한 신조를 실천하면 적어도 인천의 복보(福報)를 성취한다고 하셨다”고 강조했다.

이 글에서 스님은 “팔관재법을 지킴으로서 신도다운 신앙생활을 실천하게 될 것이며, 우리 신도들이 다 같이 팔재법을 수행한다면 자기 개인에게만 큰 복이 될 뿐 아니라 전 국가에 그 복이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설했다.

동산스님은 “금후(今後)로 우리 신도들은 이 팔관재법은 누구나 실천하도록 해야 된다. 우선 이러한 신조를 지키는 자만이 ‘정신사(正信士)ㆍ정신녀(正信女)’의 칭호를 부칠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수십 년 불교를 믿어왔다 할지라도 ‘예비신도’밖에 되지 못한다”고 경책했다.

설령 불교와 인연이 오래 되었어도, 계를 받아 지니고, 이를 잘 지켜야 진정한 불자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평생 간화선을 근간으로 정진했지만, 수행의 기초는 계를 잘 지키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역설했던 것이다.

동산스님이 정화불사 전면에 나선 배경 가운데 하나는 계율을 지키는 청정승단 구현을 위한 원력에 있다. 이 또한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계행을 청정하게 지켜야 한다는 동산스님의 소신을 증명한다. 취처육식(娶妻肉食)의 분위기가 만연한 승단을 일신해야 한다는 율사(律師)로서의 판단이 작용했다.

이같은 동산스님의 소신은 계맥을 전해준 은사 용성스님의 입장과 다르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대처식육(帶妻食肉)을 금해야 한다는 내용의 건백서(建白書)에서 용성스님은 계율수호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했다. 용성스님은 건백서에서 “불법(佛法)에는 대처식육의 설이 없으며, 부처님은 비구와 비구니 2부 대중에게는 대처식육을 엄금케하면서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하도록 했다”고 설파했다.

  
2013년 개원한 범어사 율학승가대학원에서 율학을 연찬하는 동산스님의 후학 스님들.


또한 용성스님은 “승려는 지계(持戒) 수도함이 당연하기에, 그를 제거하지 않으면 후일에 란(亂)이 일어날 것이기에 대처 승려와 대처 주지를 엄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때가 1926년 5월과 9월이며, 그로부터 10년 뒤에 용성스님은 동성스님에게 계맥을 전수했다. 동산스님은 은사인 용성스님의 계율호지 가르침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았고, 평생 수행정진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동산의 불교계 정화운동 연구>의 저자 진관스님(한국불교종단협의회 불교인권위원장)은 “용성 율사는 조선불교를 위하여 기존의 불교계를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면서 “제자인 동산스님에게 조선불교의 전통적인 금강계단의 율법을 전수하려고 했고, 조선불교계를 바르게 개혁하려는 서원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고 강조했다.

동산스님이 계를 설한 범어사 금강계단은 1970년대까지 전국 제일의 계단 위상을 갖고 있었다.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에게 비구계, 비구니계, 사미계, 사미니계를 수지한 출가 수행자가 수백 명에 이를 정도였다.

1943년 범어사 금강계단 전계화상(傳戒和尙)으로 추대된 동산스님은 원적에 들 때까지 출재가 불자들에게 계를 전하며 청정한 수행과 정진의 가르침을 설했다. “사람마다 천진 그대로요, 조금은 건드릴 것이 없으며, 뚜렷하고 깨끗한 그것을 이름 하여 계(戒)라 하니, 공부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계행을 깨끗이 해야 한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지계의 엄수를 당부했던 동산스님이다.

석주(昔珠)스님은 생전에 “(동산스님이) 용성 조사에게 전법 전계 이후에 우리나라 보살계 산림(山林)이 거의 없던 때에 범어사에서만 무려 23년간이나 보살계 산림을 개설하여 무수한 불자들을 교화하고 한국불교에 보살계 법회를 일반화시키는 기틀을 마련하셨다”고 회고한바 있다.

동산스님이 즐겨 전한 친필 휘호에서도 계율의 중요성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霜松潔操(상송결조) 水月虛襟(수월허금)”이란 글귀이다. 한글로 옮기면 “서리 내린 소나무 같은 맑은 지조와 물에 비친 달빛 같은 텅 빈 마음”이란 의미이다.

육조 혜능스님 제자인 영가스님의 <영가집(永嘉集)> 서문에 나오는 ‘상송결조 수월허금’이란 글귀를 통해 계행 청정과 참선 수행의 지남(指南)을 동산스님은 보여주었다.

한편 금정총림 범어사는 동산스님의 계맥을 후대에 전하고, 계행 청정의 수행가풍을 진작시키기 위해 2013년 5월5일 율학승가대학원(대학원장 수진스님)을 개원했다. 기본교육을 이수한 비구 스님들이 계율 과목을 비롯해, 율학과 종법 등을 익혀 율사 및 율학전문가를 양성하는 종단 전문교육기관이다. △6부 율장비교 연구 △범망경 및 대승계경 강독 △불교윤리학 △작법(수계의식) 등 율학을 연찬하고 있다.

율장을 근간으로 계율정신에 따라 수행의 표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율학승가대학원 졸업생 10명을 배출했다. 졸업식에서 수좌 인각스님과 전 교육원장 무비스님은 “금정총림 율학승가대학원이 첫 졸업생을 배출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면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일이라는 의의가 깊다”고 격려했다.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은 “동산대종사는 간화선을 참구하며 수행 정진한 선지식으로, 수행의 근간에는 계율 호지 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면서 “대종사의 뜻을 계승해 출가자는 물론 재가자들도 계율을 소홀히 하지 않고, 수행 정진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동산스님은 평소 “계(戒)가 없는 정(定)이 없고, 정(定)이 없는 혜(慧)가 없다”고 강조했다. 계정혜 삼학(三學)의 ‘균형 있는 수행’을 강조한 스님의 가르침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불법(佛法)을 전해야할 사명을 띠고 있는 한국불교의 변하지 않는 지침이다.

  
 

■ 동산스님 전계증

용성스님은 1936년 음력 11월18일 동산스님에게 계를 전했다. 용성스님은 계를 전하면서 당부한 전계증(傳戒證·사진)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해동초조(海東初祖)께서 전하신 바 장대교망녹인천지어(張大敎網?人天之魚)의 보인(寶印)을 가져 계맥과 더불어 정법안장을 정전(正傳)한 신표(信表)를 삼아 은근히 동산혜일(東山慧日)에게 부촉하여 주노니 그대는 잘 스스로 두호해 가져서 끊어지지 않게 하여 여래의 정법으로 더불어 세상에 무궁토록 할지니라.” 이 가운데 ‘장대교망녹인천지어’는 “큰 가르침의 그물을 펼쳐서 인간과 천상의 고기를 건진다”는 의미이다.

■ 동산대종사 어록

“보살계는 우리의 마음 가운데 뜨거운 번뇌를 덜기 위하여 시원한 감로문(甘露門)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부처님 전에 정각(正覺)의 길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 보살계이며, 이러한 큰 보배를 지금으로부터 얻는 것이다.”

“심성은 뚜렷하고 깨끗하여 본래 때가 없다. 천진면목(天眞面目) 가운데 무슨 때(垢)가 있으리오. 중생들이 괜히 분별로 미(迷)하여 신구의(身口意) 삼업의 허물이 있는 것이요, 깨치고 보면 허물이 본래 없는 것이다. 사람마다 천진 그대로요, 조금도 건드릴 것이 없으며 깨끗한 그것을 이름 하여 계(戒)라고 한다.”

“계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신심(信心)을 발(發)해야 하나니 신심이 만일 이루어지면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이 구족하고, 삼신(三身)과 사지(四智)와 불과보리(佛果菩提)를 결정코 기약하여 다시 의심할 나위가 없다.”

“번뇌를 끊은, 그 끊는 마음으로써 계(戒)를 삼으니 조금이라도 범(犯)하는 마음이 있으면 가지는 마음이 끊어지므로 그것은 죽은 사람이다.”

“계라는 것은 희고 깨끗한 법(자정지법, 自淨之法)이니 그러한 깨끗한 법을 받으려면 우리의 몸 그릇(신기, 身器)이 청정해야 가히 견디어 이 좋은 무상대계(無上大戒)를 받게 되는 것이다.”

“잃어버렸던 내 자성(自性)을 도로 회복하면 그 때가 이 계(戒)를 받는 날이며, 이것이 대승계법(大乘戒法)이라하고, 소승(小乘)은 그렇지 못하여 내 자성(自性)을 깨치지 못하고 번뇌를 끊는 것이 되어 그것을 소승계(小乘戒)라고 한다.”

“인간은 살면서 잘못을 행할 수 있다하더라도 그 범계(犯戒)를 바르게 참회하고 참답게 삼보께 귀의할 수 있는 발심(發心)이 입지(立志)되어야 한다.”


[불교신문3096호/2015년4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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