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심으로 총림 화합, 전법 포교해 부산 중심 될 것”

불도(佛都) 부산은 예로부터 불교세가 큰 지역으로 꼽힌다. 그 중심에는 단연 금정총림 범어사가 있다. 금정산 자락에 자리한 범어사는 신라 문무왕 18년(678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역사 깊은 사찰이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들의 기지였으며, 3.1운동을 주도하고 해방 후에는 조계종 정화를 이끄는 등 민족불교 산실로도 불린다. 현재 범어사는 부산 시민들을 위한 문화와 치유의 공간으로도 거듭나고 있다.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 범어사 가풍 따라 불교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선문화관교육센터, 성보박물관 등을 성황리 운영 중인데다가, 부산 대표축제로 자리잡은 연등행렬을 주도한다. 부산불교를 넘어 부산의 중심지로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27일 주지로 취임해 제반사항을 정비하고 있는 정오스님을 만났다.

범어사 주지 정오스님이 동산스님이 남긴 친필 휘호 ‘불심(佛心)’ 앞에서 취임 소회를 밝히고 있다.

대중화합 전제조건 ‘소통’
취임 한달 간 쉼없이 만나
조실 동산스님 남긴 ‘불심’
집무실 벽에 걸어두고 정진

선찰대본산 선풍 계승 위해
선문화관서 선명상 추진키로
박물관으로 문화가치 알리고
지역 힐링공간으로 역할할 것

주지 정오스님 집무실에 들어서자 곳곳에 놓인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스님을 중심으로 양옆, 앞뒤로 총 4개의 휘호가 스님을 감싸고 있었다. 정오스님은 그중 가장 먼저 ‘불심(佛心)’을 소개했다. 범어사 조실 동산스님(1890~1965)의 친필 휘호다. 범어사 역대 조사 스님들이 켜켜이 쌓아온 불심과 공심을 본받아 소임에 임하겠다고 마음을 다지고자 휘호를 걸었다고 했다.

지난 1월24일 임명장을 받은 정오스님은 주지 취임 후 한 달간 쉼 없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취임 소감으로 “대중화합을 최우선으로 원활히 소통하겠다”고 밝혔던 스님은 매일 7~8팀을 각 1시간씩 만나 소통했다. 정오스님은 “화합의 전제조건은 소통이며, 소통이란 상생으로 가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사람과 의견이 달라도, 우리 모두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는 의미다. 정오스님은 “전 방장스님을 비롯해 그동안 많은 어른 스님들과 대중 스님들의 의견을 들었고, 이를 취합해 총림 운영 및 화합의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정오스님은 취임 후 동안거 정진 중인 선방도 방문했다. 수많은 고승대덕 스님들이 쌓아온 범어사 선풍을 계승하기 위해, 스님은 수좌 스님들을 만나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또한 시민불자들을 위한 다양한 선명상 프로그램도 고안 중이다. 정오스님은 “국내외로 갈등과 대립이 치닫고 있는 시대,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수행’으로 마음의 평안에 힘써야 한다”라며 “범어사 선문화관에서 시민선방을 운영하고 있는데, 향후 종단 종책인 ‘선명상’과 맥을 같이할 수 있도록 구성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활용방안을 구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문화 향유시설로 발돋움하고 있는 범어사 성보박물관 역시 범어사 전통과 역사를 계승하기 위한 매개체 중 하나다. 범어사 성보박물관은 지난해 지자체 박물관과 협력을 통해 만들어낸 성과물을 모아 어린이용 그림책, 역사책, 국영문 도록도 발간했다. 정오스님은 “최근 스님과 불자들의 기증이 이어지고 있다”라며 “성보박물관은 흩어져있는 불교문화유산을 수집, 보전하는 고유의 목적과 함께 지역민에 문화의 가치를 향유하는 힐링 공간으로써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불교의 도시 부산이라지만, 종교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걱정도 많다. 정오스님은 이에 대한 방안으로 ‘범어사 포교위원회’를 꾸릴 계획이라고 했다. 스님은 “현재 청년포교, 불자양성 기틀의 문제점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본질적인 점검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라며 “각 신행단체별 문제점과 개선방안 등 여론을 수렴해 미래포교 지향점을 확인하는 세미나를 개최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학교법인 원효학원 산하 해동중학교, 금정중학교 학생들과 접점도 늘려간다. 정오스님은 “부처님 가르침을 만난 아이들이 지역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만나 범어사와의 거리를 좁히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와 연장선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청년들이 희망을 갖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책도 강구하고 있다. 단순히 청년들을 위한 법회와 행사를 개최하는 것에서 한 발자국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정오스님은 “청년들의 사고와 미래에 대한 시각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범어사 수행과 전법의 기본 가치 위에, 청년불자들이 다양한 도전으로 각자의 가능성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미래인재를 양성하고 물심양면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스님은 포교와 더불어 또 하나의 중요한 화두로 ‘복지’를 꼽기도 했다. 저출산 위기를 맞아 저출산 대책은 넘치는 데 반해, 고령화 시대의 노인들을 위한 복지나 처우 개선책이 부족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에 스님은 ‘범어사 복지위원회’를 발족, 시니어클럽과 복지관 등을 포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정오스님은 “한마디로 포교를 위해서는 다각도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포교위원회와 복지위원회를 두 축으로 삼아 부산불교 전반의 포교현황을 진단하고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산불교를 넘어 부산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기 위한 큰 그림도 갖고 있다. 범어사 주지가 회장을 맡는 부산불교연합회에서 추진하는 연등행렬이 부산 대표축제가 됨에 따라, ‘정신적 가치’를 전하면서 전법과 포교를 아우르겠다는 것이다. 정오스님은 “연등행렬이 유네스코로 지정되고 부산 대표축제로 자리 잡은 데는 불교가 주는 정신적 가치에 있다”라며 “반짝이는 연등을 들고 도심을 걷는 수백 명 인파를 보면 저절로 기쁨이 차오르듯이, 물질적 가치에 치중된 시대에 불교만이 줄 수 있는 정신적 가치를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부산 시민들 마음에 평안과 행복을 선사하겠다는 것이다.

인터뷰 끝 무렵, 정오스님은 나머지 휘호도 소개했다. 동산스님의 휘호 ‘불심(佛心)’와 ‘감인대(堪忍待)’ 옆으로, ‘보리군생(普利群生)’과 ‘속성정각(速成正覺)’이 쓰여있었다. 후자는 조계종 종정예하 중봉 성파대종사와 금정총림 방장 정여스님이 선사한 휘호다. 정오스님은 이를 설명하며 임기 중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를 들려줬다.

“범어사 주지 자리는 좀 더 크게 봉사할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보리군생(普利群生) 속성정각(速成正覺). 빨리 깨우쳐 중생을 이끌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 통도사만한 설법전을 지어 여러 대덕 스님들과 함께 좋은 법석을 열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좀 더 내밀한 목표를 말하자면, ‘저 사람, 진짜 공심으로 일하는구나’라는 평가를 듣고 싶어요. 어른 스님들의 가르침을 새겨 안으로도, 밖으로도 공심을 가지고 소임을 다하는 방법 뿐이겠지요.”

■ 정오스님은…

정오스님은 벽파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90년도 수계했다. 화엄사 선등선원, 극락암 호국선원, 서운암 무위선원 등에서 13안거를 성만했고, 기본선원 선감으로 3년을 지냈다. 또 가야사, 장안사, 고불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제15대, 16대 중앙종회의원과 종립학교관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23년 10월30일부터 범어사 주지 직무대행을 맡아왔다.

[불교신문 3811호/2024년3월12일자]